영재교육 확대의 명과 암: 창의성 육성인가, 또 다른 입시경쟁인가
영재교육은 창의성과 잠재력을 갖춘 학생들에게 맞춤형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로, 국가 경쟁력 제고와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한 핵심 정책으로 자리잡아 왔다. 하지만 제도의 확대와 함께 지역 간 불균형, 선발 과정의 공정성 문제, 입시 수단화 등의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본 글에서는 영재교육의 확산 배경과 정책 변화, 그 이면에 감춰진 구조적 문제를 함께 살펴본다.
누가 ‘영재’인가: 영재교육의 정의와 태동
‘영재’라는 단어는 단순히 ‘공부를 잘하는 학생’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육학적으로는 특정 분야에서 두드러진 재능을 보이거나,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 높은 학습 잠재력을 가진 학생들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영재교육이 제도권으로 들어온 것은 2000년대 초반으로, ‘영재교육진흥법’이 제정(2000년)되면서 국가 주도의 영재교육 정책이 체계화되기 시작했다. 이 제도의 도입 배경에는 글로벌 경쟁력 확보와 과학기술 기반 사회로의 이행이라는 국가적 전략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단지 평균적인 인재가 아닌, 탁월한 역량을 가진 소수를 조기에 발굴해 집중 육성함으로써 미래 산업을 선도할 ‘창의적 엘리트’를 육성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이는 ‘우등생 양성’이 아닌, 창의적 문제해결자와 혁신적 사고력을 가진 리더를 키우겠다는 취지였다. 초기에는 과학영재 중심으로 정책이 시작되었으며, 이후 수학, 정보, 인문사회, 예술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영재학급, 영재교육원, 영재고등학교, 과학고 및 과학영재학교 등 다양한 형태의 교육기관이 설립되었고, 대학과 연구기관과의 연계 프로그램도 다수 운영되기 시작했다. 정부는 영재교육을 통해 교육 다양화와 학생 맞춤형 학습의 대표 모델을 만들고자 했고, 학교는 ‘일반교육과 영재교육의 균형’을 주요 목표로 설정하였다. 또한 영재교육은 단지 지식 전달에 그치지 않고, 실험·탐구·프로젝트 중심의 활동을 통해 창의성과 자기주도학습 역량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영재교육은 점차 그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선발 과정의 경쟁이 과열되고, 영재교육 대상이 특정 계층과 지역에 집중되며, 일각에서는 영재교육이 또 하나의 ‘엘리트 입시 코스’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비판은 단지 제도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누가 교육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게 한다.
영재교육의 현실과 구조적 문제
영재교육은 그 의도만큼 이상적이지 않았다. 제도 시행 20여 년이 지난 지금, 영재교육은 여전히 한국 교육의 ‘양날의 검’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문제는 **선발 구조의 불균형과 사교육 의존**이다. 첫째, **선발 과정의 공정성 문제**다. 이론적으로는 모든 학생에게 열려 있고, 잠재적 능력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입학 전형이 지나치게 학습 능력 중심으로 치우쳐 있다. 영재교육 대상자 선발 과정에서 사용하는 창의성 검사, 심층 면접, 캠프 활동 등은 명분상으로는 비인지적 역량을 평가하는 도구이지만, 사교육을 통해 대비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 둘째, **지역 간 격차**다. 서울·수도권과 대도시에 영재교육 기관이 집중되어 있고, 지방 소도시나 농산어촌 학생들은 기회 자체가 제한적이다.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은 ‘온라인 영재교육’, ‘지역 거점 영재교육원’을 통해 균형을 맞추려 했지만, 인프라와 교사 확보 문제로 실효성이 크지 않았다. 이로 인해 **교육 기회의 불균형**은 더욱 고착화되고 있다. 셋째, **영재교육의 입시화**다. 영재교육의 본래 목적은 창의적 인재 양성이나, 많은 학부모와 학생에게는 ‘좋은 대학 진학을 위한 발판’으로 인식되고 있다. 영재고나 과학고는 명문대 진학률이 높기 때문에, 이들 학교에 입학하는 것 자체가 **명문대 트랙**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입시 컨설팅과 사교육이 이 시장을 적극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이로 인해 영재교육은 또 다른 입시 경쟁을 유발하는 구조로 변질되고 있다. 넷째, **교육 내용의 편향성**이다. 영재교육은 탐구 중심 교육을 지향하지만, 실제 교육 과정은 특정 분야, 특히 수학·과학 중심으로 편중되어 있다. 이는 융합형 인재 양성을 저해하고, 타 분야 영재(예: 인문, 예술)의 발굴이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최근에는 ‘AI 영재’, ‘디지털 창의 인재’ 등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과학기술 중심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영재교육이 단지 한정된 소수의 학생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국가 교육철학의 축소판**이라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영재교육의 왜곡은 결국 전체 교육 구조에 대한 반성과 혁신을 요구하게 만든다.
영재교육의 재설계, 창의성과 공정성의 균형을 위하여
영재교육은 분명 필요하다. 미래 사회는 평균적 역량을 넘는 창의성과 융합 능력을 갖춘 인재를 요구하며, 이는 조기 발굴과 맞춤형 교육이 가능한 제도적 장치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영재교육은 **그 취지와 운영 방식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고 있으며, 일부 계층과 지역의 이익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도 전반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우선, **선발 시스템의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단기적 성취보다 장기적 잠재력을 평가하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하며, 표준화된 평가 도구보다 **다중 평가자, 포트폴리오 기반 평가** 등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사교육 개입을 최소화하기 위한 평가 문항 비공개, 지역 내 추천제 강화 등도 병행되어야 한다. 둘째, **영역별 다양성 확보**가 시급하다. 수학·과학 중심 영재교육에서 벗어나, 인문학적 상상력, 사회적 리더십, 예술적 감수성 등 다양한 재능을 포괄하는 ‘통합형 영재교육’이 확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예술영재학교, 인문사회영재원 등의 제도적 지원 확대가 필수적이다. 셋째, **지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실질적 투자와 정책 연계가 필요하다. 단지 거점센터를 만드는 것을 넘어서, 우수 교사의 순환 배치, 지역 특화 영재교육 모델 개발, 온라인·오프라인 병행 프로그램 운영 등 실효성 있는 전략이 요구된다. 넷째, **영재교육의 목적 재정립**이 필요하다. 입시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학생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탐색하고, 창의적인 문제를 제기하며,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경험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사의 전문성 강화, 교육과정 유연화, 성과 평가 방식 다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결국 영재교육은 단지 일부의 특권이 아니라, **전체 교육의 실험실**이어야 한다. 그 실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창의성과 공정성, 다양성과 통합성이라는 균형을 놓치지 않는 정책적 설계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영재'를 어떻게 정의하고 바라보는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서 시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