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구조조정과 지역 대학의 위기: 고등교육의 불균형을 넘어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 집중 심화로 인해 국내 지역 대학들은 생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 정책은 효율성 제고를 목표로 추진되고 있지만, 지역 균형발전과 고등교육 다양성 확보 측면에서 복합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본 글에서는 대학 구조조정의 배경과 한계, 지역 대학이 처한 현실을 분석하고 정책 대안을 제시한다.
지방대의 몰락, 교육 위기의 전조인가?
대한민국 고등교육 체계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팽창해왔다. 대학 진학률은 80%를 넘겼고, 전국 곳곳에 대학이 설립되며 고등교육은 ‘보편화’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이제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가 가속화되면서 대학은 ‘입학생 모집 경쟁’에 내몰리고 있으며, 특히 지역 소재 대학들은 **존폐 위기**에 직면해 있다. 실제로 2023학년도 기준으로 전국 4년제 대학 중 50곳 이상이 신입생 충원을 100% 달성하지 못했고, 그 중 대부분은 **비수도권 중소도시 소재 대학**이었다. 이는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감소 추세**이며, 고등교육의 미래를 위협하는 심각한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대학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정원 감축, 재정지원사업 연계, 평가 중심의 선택과 집중 등은 그 대표적인 정책 수단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단순히 ‘정원 조정’에 그치지 않고, **지역 대학의 소멸과 교육 격차 확대**라는 부작용을 야기하고 있다. 특히 지역 대학은 교육 기능 외에도 지역 경제, 문화, 청년 인구 유지에 있어 핵심적 역할을 한다. 대학이 사라지면 단지 교육기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역 사회 전체의 생태계가 붕괴**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대학 구조조정은 효율성만이 아닌 **균형발전, 지역 회복력, 교육 다양성 확보**라는 다차원적 관점에서 접근되어야 하며, 지역 대학의 위기는 국가 고등교육 시스템 전반의 위기라는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대학 구조조정의 흐름과 지역 대학의 현실
한국의 대학 구조조정은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되었다. 당시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고등교육의 효율성과 질 제고가 정책 의제로 부상하면서, 대학 통폐합과 정원 감축이 제도화되기 시작했다. 첫째, **정원 감축 중심의 구조조정 정책**이다. 교육부는 ‘대학 기본역량 진단’, ‘대학혁신지원사업’ 등을 통해 평가 중심의 정원 감축을 유도하고 있으며, 재정지원 중단이라는 방식으로 구조조정 대상 대학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준은 수도권 대학에 상대적으로 유리하며, 지역 대학은 **재정과 학생 충원에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 둘째, **수도권 집중의 가속화**다. 수험생과 학부모는 취업 경쟁력, 교육 환경, 입시 브랜드 등을 이유로 수도권 대학을 선호하고 있으며, 이는 지역 대학의 입학 경쟁력을 더욱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서울 소재 대학은 정원 감축 대상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운 반면, 지방대는 감축 압박과 동시에 **입시 경쟁력 하락이라는 이중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셋째, **지역 대학의 다기능성 위기**다. 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지역의 고용창출, 청년 문화, 산학협력 거점으로 기능해왔다. 그러나 대학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지역 청년 유출, 지역 경제 침체, 고령화 심화 등의 문제가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넷째, **특성화와 혁신의 한계**다. 정부는 지역 대학에 특성화 전략과 산학협력 강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그 기반이 되는 인프라와 인재가 부족한 상황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중소도시 대학은 우수 교원 확보, 산학 협력기업 연계, 연구비 유치 등에서 수도권과 큰 격차를 보인다. 다섯째, **사회적 신뢰도 하락**이다. 일부 사립대학의 회계 부정, 부실 운영 사례는 전체 지역 대학에 대한 불신을 확산시키고 있으며, 이는 다시 입학생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 구조**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지역 대학은 정책적 사각지대 속에서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를 이어가고 있다. 단순히 몇 개 대학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과 교육, 국가의 미래를 연결하는 고리**가 약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위기는 근본적인 정책 재설계 없이는 해결이 어렵다.
대학과 지역의 동반 생존 전략이 필요하다
고등교육은 국가 경쟁력의 근간이자, 개인의 삶과 지역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다. 따라서 대학 구조조정은 단순한 수요 공급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성과 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 철학**이 담겨야 하는 정책 영역이다. 앞으로 지역 대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향성이 필요하다. 첫째, **정원 감축 중심 구조조정의 재검토**다. 양적 축소가 아닌 질적 개편, 예컨대 교육과정 혁신, 융합 학과 신설, 원격·혼합교육 기반 확대 등으로 대응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둘째, **지역 맞춤형 대학 정책 강화**다. 교육부는 지역산업과 연계한 대학 지원정책을 설계하고, 지자체와 협력해 지역 주도형 대학육성 모델(LINC 3.0, RIS 등)을 확대해야 한다. 셋째, **지자체와 대학의 공동운영 거버넌스 구축**이다. 지자체가 대학 운영에 예산과 정책적으로 참여하고, 대학은 지역 청년 일자리, 생활 SOC, 문화 활성화에 기여하는 **지역 상생형 대학 모델**이 필요하다. 넷째, **지역 대학의 신뢰 회복과 투명성 확보**다. 경영 투명성, 학생 참여 확대, 공공성 강화 등으로 대학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다섯째, **고등교육 재정 개편**이다. 대학 간 자율경쟁을 유도하되,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대원칙 아래 **지역 대학에 대한 별도 재정지원체계**가 필요하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교육의 수요자 수가 줄더라도, **교육의 공공성은 축소되어선 안 된다.** 지역이 살아야 대학이 살고, 대학이 살아야 지역이 지속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고등교육의 미래를 수도권 중심 효율성만으로 판단할 것인지, **국가 전체의 지속 가능성 관점에서 바라볼 것인지**라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대학 구조조정, 이제는 **지역과 동행하는 전략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